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두환/다른 정치인 및 대통령과의 관계 (문단 편집) === [[박정희]] === || [[파일:전두환대대장시절.jpg|width=100%]] || 박정희는 전두환이 반평생을 섬겼던 그의 상관이었다. 박정희가 소장이던 시절에 전두환은 대위에 불과했으니 계급 차이가 상당했었다. 나이 차이도 14살이니, 당연히 전두환은 박정희에게 꼼짝 못했을 수밖에 없다. 5.16 직후 전두환은 대위(ROTC 교관)로 육사 생도들을 규합, 군사정변 지지 시위를 벌임으로써 박정희의 눈에 들게 되었고 이후 군 내 요직을 두루 거치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전두환에게 있어 박정희는 주군이자 은인인 셈이다. 소령 진급까지는 육사 11기생 동기들 중 가장 진급이 빠른 선두주자는 전두환이 아닌 [[손영길]][* 1964년에 하나회를 만든 주역이다.]이었다. 그러나 전두환에 대한 박정희의 총애 덕분에 소령은 짧은 기간 동안(1년 2개월)만 하고 바로 중령으로 진급했다.[* 전술한 것처럼 1962년 12월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박정희가 차지철과 전두환을 불러 국회의원을 해보라고 권유했는데, 차지철은 의원직을 맡기로 하고 전두환은 군에 남기로 했다. 전두환은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비서관이었는데, "아직은 군대에도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답변을 했던 것.이 '의원 문답' 이후 전두환이 본격적으로 빨리 진급하게 되었다. 1961년 11월에 소령으로 진급한 전두환은 그로부터 불과 1년 2개월만인 1963년 1월에 중령으로 진급하여 중앙정보부 총무국 인사과장이 되었으니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한 기간이 무척이나 짧은 것이다. 물론 한국전쟁 중에는 고위 지휘관이 턱없이 부족해서 닥치는대로 진급시켜버리는 바람에 이보다 빠른 경우들이 많이 존재하긴 했다. 참고로 미국에서도 진급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했던 케이스가 있는데, 바로 [[둘리틀 특공대]]의 [[둘리틀 특공대|제임스 둘리틀]]이다. 둘리틀의 경우, [[대위|대'''__위__''']]에서 [[준장]]까지 1년 조금 넘는 기간밖에 안 걸렸다.]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당시 장성급들도 못 건드리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12.12 군사반란]] 당시 [[차규헌]], [[유학성]], [[황영시]] 이 3명의 __중장들이 소장인 전두환의 부하__로 활약했을 정도였다. 중장이 소장의 부하로 활약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비호 아래에서 가능했던 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